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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업의 기원
잠업은 기원전 BC 2560년경 중국의 3황(皇) 5제(帝)시대 황제(皇帝)의 원비 서릉(西陵)씨가 정원릉 산책하던 중에 우연히 누에가 고치를 지어 놓은 것을 보고 그 이용방법을 강구한 것을 잠업의 기원으로 보고 있다.
  
또 다른 설은 1926년 중국의 산서성 장안근처에서 얀사오시대 (BC2500년경)의 유적발굴에서 견각(누에고치의 껍질)이 발견됨으로 잠업의 기원을 신석기 시대로 보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잠업의 역사
한단고기(桓檀古記)에 의하면 단군조선시대에 잠업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어 4000년 이전에 양잠을 한 것으로 본다.
 - 무진(戊辰)원년(BC 2333) 바야흐로 신시(神市)의 다스림이 시작되었을 때 비서갑의 하백녀를 후(后)로 삼고 누에고치를 다스리게 하니 순방의 다스림이 온 세상에 두루미쳐 대평치세를 이루었다.
 - 경자(庚子) 93년 (BC 2241) 단제(檀帝)께서 도랑을 파고 밭길을 내고 누에를 치도록 권장하고 고기잡이를 가르치니 백성들은 먹고 남은 것을 나라살림에 보태었다.
신축(辛丑) 원년 (BC 2240) 단제(檀帝)께서 도랑을 파고 고치며, 농사를 짓고 뽕나무 심는 것을 권장하였다.
  
01. 삼한시대
삼한에 대한 삼국지(三國志), 후한서(後漢書), 통전(通傳)의 기록을 보면,
  - 마한(馬韓 : 충청, 경기, 황해도)은 토지가 비옥하여 오곡과 면(綿)의 이종(移種)에 적당하고 잠상(蠶桑)에 풍요하다.
  - 진한(辰韓 : 경상도)은 잠상(蠶桑)을 지(知)하고 겸포(?布)를 만들었다고 한다.
  
02. 삼국시개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 모두 “농상(農桑)”이라 일컫는 양잠을 백성들에게 권장하였으며, 백제 초고왕(AD 199)때 양잠과 직조법을 일본에 전파하였다.
특히, 직조기술이 발달하기 시작하여 누에고치를 이용하여 생산한 비단은 아주 큰 교역 물목이 되기도 하였다.
03. 고려시대
한층 발전된 우수한 비단생산이 가능해졌고, 귀족계층의 확대로 비단이용이 늘어났으며, 국가의 기간산업으로 양잠을 장려하고,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있었다.
특히, 인종 5년 (1127)에 중국 송나라 손광현이 편찬한 잠서(蠶書)를 임경화(林景和)가 이두로 풀이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전문 농업서적인 잠경주해(蠶經註解)를 펴내서 누에치는 법을 보급하였다.
  
04. 조선시대
초보수준에 머무르던 양잠기술이 조선이 건국되면서, 양잠에 관한 여러 가지 법제도를 만들어 강력한 권잠정책을 펼쳤고, 잠서의 간행으로 양잠기술이 크게 발전하는 계기가 되어 조선시대의 양잠은 농가부업으로 전국에 확산되면서 산업화 되었다.
   
조선초기 왕들은 농상(農桑)을 의식(衣食)의 근원이라 하여 국가정책으로 적극 권장하였으며, 조선 후기에는 면직업(綿織業)과 함께 국가중심산업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태조는 종상지법(種桑之法)을 제정하여 양잠을 권장하였고, 정종 2년에는 잠신에게 선잠제(先蠶祭)를 거행하였으며, 태종 11년에는 후비친잠례(后妃親蠶禮)를 명하여 행하도록 하였으며, 공상잠실법(公桑蠶室法)을 제정하여 잠실도회(蠶室都會)를 설치하여 운영하였다.
   
세종 5년에는 경복궁과 창덕궁에 뽕나무를 심게하고 친잠례 거행과 각도에 잠실을 설치하여 잠실도회에서 양잠기술을 배우도록 하였다.
  
성종, 중종을 비롯한 조선 역대 왕들도 권잠 정책을 펼쳤으며, 왕비친잠행상를 계속하고, 잠상에 관한 도서를 간행하였다.
  
지금도 창덕궁에는 왕비가 친잠을 하며, 양잠을 권하던 어친잠실(御親蠶室)이 보전되어 있고, 그 주변과 경복궁에는 당시에 심어진 아름드리 뽕나무가 자라고 있어 이를 천연기념물 제471호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05. 근대와 현재
일제강점기와 6.25 한국전쟁을 겪은 우리나라의 최고 수출 효자 산업인 잠업은 국가경제 개발에 크게 기여하여 왔으나, 1976년을 정점으로 매년 감소하여 1991년~1994년 UR협상타결로 누에고치 및 생사류 수입이 개방되어, 국제적 경쟁력을 상실하게 된다. 1995년 공교롭게도 전국적으로 사육한 누에가 농약피해로 인해 누에고치를 짓지 않는 사태가 발생하여 전통섬유산업으로서 4천년 역사의 막을 내리게 된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 잠업은 “입는 실크 산업”에서 “양잠 기능성 식품산업”으로 변화를 모색하여, 현재는 누에가루, 동충하초, 뽕잎, 오디, 실크아미노산, 수누에번데기 등 양잠산물의 기능성을 이용한 식품산업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화장품, 비누, 샴푸 등 미용산업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전통섬유산업으로서 잠업이 잠시 주춤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수천년을 이어온 우리나라의 비단(SLIK) 역사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入古出新(입고출신)”이라는 말이 있듯이 역사가 깊고, 전통이 있는 비단을 새롭게 창조하는 사람들로 다시 한번 그 가치를 인정받을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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